갈 곳 없는 아이들 돌보는 지역아동센터, 교사 월급은 84만원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3부] 애 키우기 전쟁

“아이가 집에 안 들어 왔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아이를 찾고 있는데, 들어왔다고 다시 연락이 왔어요.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술에 취한 것 같더라고요. 욕을 하면서 ‘내일은 아이를 공부방에 안 보내고 고아원에 보내겠다’며 전화를 끊었어요.”

충북 제천시 하소동의 지역아동센터 ‘늘바른 공부방’에서 일하는 안세미 사회복지사는 아이들의 불안정한 가정환경 때문에 아슬아슬한 심정이 될 때가 많다. 그 날 어머니가 전화를 끊은 뒤 태훈(13·가명)이가 울면서 다시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저 고아원에 보내주세요.” 
 
초등학교 6학년인 태훈이는 엄마랑 단 둘이 살고 있는데, 엄마는 알콜중독 경험이 있다. 그날도 술 취한 엄마가 태훈이에게 막말을 하고 마구 때린 모양이었다. 안 복지사는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연락해서 태훈이를 집에서 데리고 나왔고, 주말을 공부방에서 보내도록 했다. 술에서 깬 태훈 엄마는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태훈이도 엄마에게 다시 기회를 주기로 했다. 태훈이는 지금 엄마와 살면서 공부방에 나오고 있다.

하지만 태훈이는 내년부터 이 공부방을 이용할 수 없다. 늘바른 공부방은 초등학생만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중학생도 받아주는 지역아동센터를 찾지 못하면 태훈이는 지난 번 같은 일이 또 생길 때 혼자 감당해야 할 것이다.

자금난과 인력난에 시달리는 지역아동센터

 ▲ 제천시 하소종합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늘바른 공부방. ⓒ 송가영

같은 공부방에 다니는 진호(10·가명)는 아빠와 단 둘이 산다. 언제부터 엄마가 없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진호는 아직 숟가락질이 서툴 만큼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지만 일용직 근로자인 진호 아빠는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와 교육 여건을 만들어 줄 능력이 없다. 진호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을 따라 공부방에 갔다가 저녁 7시쯤 아빠와 함께 집에 간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빠가 데려다주지 않으면 공부방을 찾아가지 못하는 진호는 여름방학이 시작된 후 이틀 동안 집에 혼자 있어야 했다. 주변학교가 아직 여름방학을 시작하지 않은 탓에 공부방은 여전히 오후 2시부터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진호의 경우 학교에서도, 공부방에서도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하지만 형편 상 그냥 일반학교에 다니고, 일손이 부족한 공부방 역시 별도의 배려를 해 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소외계층을 위한 공부방에 뿌리를 둔 지역아동센터는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부모가 퇴근하기 전까지 돌봐주는 복지시설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3690개 지역아동센터에서 10만200여 명을 돌보고 있다. 태훈이나 진호처럼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 부모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우는 아이들, 저소득 맞벌이 가정의 아이 등 취약계층 아동들이 방과 후 의존하는 피난처이자 쉼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매우 미흡한 수준이어서 각 센터마다 자금난, 인력난으로 정상적인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시로 떠나는 교사와 자원봉사자, 아이들은 혼란

▲ 월드비전에서 운영하는 ‘꽃때말 공부방’ 아이들. ⓒ 주상돈

"아이들 데리러 가는 길인데 조금만 기다리시겠어요?"

지난 5월 제천시 동현동 ‘꽃때말 공부방’에서 만난 성명석(여) 교사는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을 차로 실어 나르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학교별, 학년별로 수업 끝나는 시간이 달라 하루에 4~5번 차량 운행을 해야 한단다. 아이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역아동센터도 있지만 꽃때말 공부방은 먼 데서 오는 아이들이 많아 차로 실어 나른다. 

이 공부방은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에서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로 초등학생들이 대상이다. ‘꽃때말’은 월드비전 친선대사 김혜자씨가 쓴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줄여 지은 이름이다. 교실에선 다양한 학년의 아이들 11명이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외부 수학강사를 초빙해 수학교실을 운영 중이다. 아이들이 각자의 문제집을 풀면 선생님이 채점해서 틀린 문제를 풀어주는 방식으로 지도하고 있었다. 인근 대학교 사회복지과 학생 2명이 함께 문제 풀이를 도와주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아이들이 한창 문제집을 풀고 있을 때 두 번째 차로 아이들 5명이 더 왔다. 성 교사는 문제집을 푼 아이들에게 우유와 시리얼을 간식으로 준 후, 고학년 아이들을 데리러 다시 차를 몰고 나갔다. 아이들의 편의를 위해 차량운행이 필요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고, 운전까지 해야 하는 교사는 고달프기 짝이 없다. 성 교사는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지난 15일 공부방을 그만뒀다.

2010년 보건복지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역아동센터의 교사 1 명이 돌봐야 할 아이들은 평균 13.5명이지만 행정업무를 처리하거나 차량운행을 위해 교사가 자리를 비우면 아이들 20~30명을 1 명이 맡아야 한다. 부족한 인력을 자원봉사자로 메우고 있지만, 언제 그만 둘지 알 수 없는 자원봉사 인력에 기대는 데는 한계가 있다. 프로그램을 전담하던 자원봉사자가 그만두면 프로그램이 취소된다. 컴퓨터는 있는데 가르칠 교사가 없어 컴퓨터교실을 운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 ‘사랑의 교실’ 아이들이 그림심리치료 프로그램 시간에 조별로 모자이크 꽃병을 만들고 있다(위), 자원봉사자가 기증한 ‘사랑의 교실’ 활동실 탁구대에서 아이들과 자원봉사자가 탁구를 치고있다. ⓒ 송가영

제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늘바른 공부방은 보통 오후 2~3시쯤 학교를 마치고 온 아이들을 7시까지 돌보고 부모가 늦게 퇴근하면 2~3시간 정도 더 아이들을 돌봐준다. 하지만 교사에게 초과근무수당은 없다.

“정부에서 공부방에 매달 350만 원을 지원하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부족해요. 인건비 때문에 전문적인 선생님을 모시기 어렵고, 아이들에 비해 교사 수가 너무 부족합니다.”

안세미 사회복지사는 사정이 절박한 부모와 아이들을 돕는다는 사명감으로 낮은 처우에도 불구하고 일하지만 솔직히 힘들 때가 많다고 털어 놓았다.

역시 하소동에 있는 ‘사랑의 교실’은 제천에서 가장 큰 지역아동센터인데 정규교사 1 명과 파견교사 1 명, 인턴교사 1 명이 아이들 37명을 돌본다. 최인숙 원장만 정규교사고, 주부봉사단원 2명이 각각 파견교사와 인턴교사로 아이들에게 풍선아트, 컴퓨터, 피아노 등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인턴교사는 두 달 뒤면 인턴 기간이 끝난다.

“주변에 영어 잘하는 사람 없어요? 선생님이 없어서 영어 프로그램을 못하고 있답니다.”

최 원장은 전문분야의 소양을 갖춘 자원봉사자를 찾기 힘들어 공부방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대학교의 봉사동아리 등에서 도와주러 오지만 부족한 일손을 자원봉사에만 의존하긴 어렵다. 대학의 학사 일정 등에 따라 프로그램이 중단되거나 활동 기간이 짧아 아이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한다.

돌봄서비스, 아동 권리 향상 관점에서 체계적인 지원 절실

▲ 지역아동센터가 법제화된 2004년부터 현재까지 그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 주상돈
지난 2004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돼 지역아동센터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자 정부는 각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운영되던 공부방을 지역아동센터로 전환해 예산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지역아동센터는 18세 미만의 저소득층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데, 수용 능력에 따라 초등학생만 받는 곳도 있다. 지역아동센터를 설립하려면 개인의 경우 사회복지사 3급 이상의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현재 개인이 꾸려가는 센터가 50% 가량으로 가장 많고 나머지는 종교단체, 사회복지법인 등이 운영하고 있다.   

전국 지역아동센터 중 설립 1년 미만의 시설을 제외한 80% 정도가 올해 예산 기준으로 월평균 370만 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다. 운영비는 시설임대료와 인건비, 공과금, 프로그램비 등으로 쓰인다. 정부가 경비 사용비율을 ‘인건비와 운영관리비 80%이하, 프로그램비 20%이상 지출’로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시설임대료가 오르면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최근 전월세가 가파르게 오른 도심지역의 지역아동센터는 사정이 심각하다. 각종 단체에서 책과 옷, 간식 등을 지원해주어 모자라는 운영비를 벌충할 수 있는 센터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부설 아동정책연구소 이향란 소장이 실시한 2010년 전국지역아동센터 실태조사에 따르면 종사자의 평균 급여는 약 84만원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56.1%가 법적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 있었다.

이처럼 낮은 처우는 교사의 열정과 소명감을 떨어뜨린다. 지역아동센터에 근무하는 한 교사는 임금 수준을 묻자 “솔직히 이만큼 받고 일한다는 것이 외부로 알려지는 게 창피하다”며 답변을 피했다.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은 공휴일에 방치된 아이들을 위해 추가로 나와 일할 때도 있지만 별도의 휴가나 휴일근무수당은 생각하지도 못한다.
 

 ▲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전지협)은 2008년 10월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지역아동센터 운영 현실화에 대한 기자회견을 했다(좌), '2010 지역아동센터 운영비 현실화 및 차별적 평가거부 선언 전국대회' 포스터(우). ⓒ 전지협제공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는 지난 6월 임시국회에 지역아동센터 운영비 현실화를 청원했다. 정부보조금을 1개소 당 월 600만원 수준으로 올려서 종사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현재 방과 후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아동 120만여 명 중 겨우 20만 명 정도가 방과 후 학교와 지역아동센터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앞으로 복지선진국들처럼 학교를 중심으로 돌봄서비스를 대폭 늘려야 하겠지만 우선은 지역아동센터든 학교에서 제공하는 돌봄교실이든 더 많은 아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복지선진국인 스웨덴은 전체 아동의 90% 가까이가 공적 돌봄서비스의 혜택을 받고 있다. 이향란 소장은 돌봄서비스를 양적으로 늘려 현재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보살피는 일이 시급하고, 동시에 돌봄서비스에 대한 지원을 늘려서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보육·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과 후 돌봄서비스의 목표가 초기에는 여성이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있었지만 지금은 아동의 권리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정책 초점이 아이들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집중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선진국의 경우에는 방과 후 돌봄 서비스 소관 부서가 복지부에서 교육부로 이관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학교에서 운영하는 돌봄교실의 경우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지역아동센터는 복지부에서 지원하는데, 이를 통합지원하는 체계를 만들고 서비스의 대상과 질적 수준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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