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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거나 싸우거나

기사승인 2018.03.14  23:4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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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케치북] 모기와 살충제

   
▲ 안윤석PD

여름 고시원은 그야말로 ‘낫닝겐’ 구역이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버텨내기 힘들다. 곧 녀석들이 돌아올 것이다. 고시원 세탁실이며 환풍구, 에어컨 필터, 특히 고인물 근처에 있다면 반드시 도사리고 있는 녀석들. 모기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 내가 ‘세명고시원 301호’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보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녀석들은 고시원 배기구며, 환풍기 등을 돌아다니며 내 피를 빨아먹을 ‘신박한’ 루트를 찾고 있을 것이다. 이들을 외면할 것인가 바라보고 응징할 것인가. 본디 나는 물 같은 성격이라 ‘거 참, 헌혈하는 셈 치겠소’라 생각하며 이들을 외면하려 했으나, 작년엔 이들에게 헌혈을 해도 너무 해 버렸다. ‘넘사벽’처럼 피를 빨아먹는 이 녀석들을 이번엔 정면으로 바라보며 박멸할 것이다. 그때 고시원 계약서에 적힌 문구 한 구절이 내 뇌리에 스쳤다.

“벽지에 모기시체가 있을 시, 도배 비용 일체를 을이 갑에게 지불한다.”

이 무슨 ‘멘붕’같은 소리인가. 벽에 붙은 모기만큼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것은 없거늘 사장은 해도 너무했다. 쉽사리 지나쳐 버린 계약서 한 줄이 ‘흠좀무’ 되어 돌아올 줄이야... 이를 외면할 것인가 사장과 한판 할 것인가. 애써 사장을 외면하기로 결정한다. 방 빼라면 길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듣보잡’ 신세가 나다. 계약서에 적힌대로 난 을이다. 대신, 난 인류의 위대한 문명을 철썩같이 믿고 이 모기들을 직접 바라보기로 결정한다. 인터넷을 켰다. 모기박멸을 검색했다. 인류는 위대했다. 인터넷엔 모기를 박멸할 수 있다는 신무기들이 수백가지나 되었다. ‘광클’을 하면 할수록 무기의 수는 늘어갔다. 어느 하나 고를 수 없을 정도다. 침착하자. 모든 전쟁이 그렇듯 일단 모기와 협상부터 시도해보기로 한다. 우선 내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쉴드’를 치기로 하자. 초음파를 쓰는 온건책을 써 응징은 뒤로 미루고 소극적으로 그들을 바라보기로 한 것이다. 그날 밤, 난 처절한 배신을 맛봤다. 녀석들은 기습적으로 융단폭격을 날렸고, 다량의 피를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전쟁의 명분이 생겼다. 난 이제 이들을 적극적으로 바라보며 응징할 것이다. 인터넷 주문을 하고 택배로 모기퇴치 무기들을 받을 시간도 사치다. 곧바로 집 앞에 있는 1000원 마트, ‘다 있소’로 향한다. 홈x파, 홈x트 등 3000원이면 살 수 있는 여러 ‘케미’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지름신’이 강림한 냥 난 그 무기들을 가득 사들였다. 돌아와 포장을 뜯었다. “안심하시고 사용하십시오”란 설명서 문구는 보기만 해도 든든했다. 특히 “자연에서 추출한 쾌적한 숲속 향”이라니 그 센스와 섬세함에 반해버렸다.

그날 밤, 반격의 서막이 올랐다. 무기를 장착한 난 녀석들에겐 신이다. 방안이 자욱해질 정도로 녀석들에게 화학공격을 가했다. 숲속 향을 음미해가며 에어컨 뒤, 커튼 뒤, 환풍기, 심지어 화장실까지 뿌려가며 모기들을 잡았다. 녀석들은 힘없이 방바닥으로 떨어져 날개를 퍼덕이며 전사했다. 며칠간 전쟁은 계속 되었다. 모기들을 바라보며 응징한 결과 녀석들은 며칠 후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 나는 승리했다. 만세가 절로 나왔다. “꿀잠 만세! 만세! 만만세!!” 이번만큼은 꿀잠을 자리라.

   
▲ 모기 퇴치를 하려 살충제를 과하게 뿌렸더니 눈까지 따가울 정도다. 상처뿐인 승리라는 건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인가. ⓒ PNGTREE

희생 없는 승리는 없다 했던가. 모기들을 퇴치했음에도 꿀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불을 켜고 몸을 살폈다. 빨갛게 올라온 피부, 분명 모기에게 물린 흔적은 없었으나, 붉은 반점을 살피자니 순간 머리도 아팠다. 속도 메스껍다. 자리를 박차고 화장실로 간다. 살충제를 뿌리고 문 여는 걸 잊어버린 화장실은 심각했다. 이젠 눈까지 따가울 정도다. 상처뿐인 승리라는 건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인가. 하지만 승리라기에 내 눈은 너무 따갑고, 몸도 가렵다. 방법을 찾아보려 설명서를 다시금 찾아보지만 “안심하시고 사용하십시오”란 말 뿐이다. 애초에 이 구절에 의심하지 않고 외면한 채로 안심하고 또 안심한 나였는데... 그 도끼에 내가 찍혔다. 난 모기에게도 배신당했고, ‘케미’에게도 배신당했다. 내일 일찍 알바도 가야하고 학원도 가야하는데 그곳에서 난 또 졸게 생겼다. 우선 병원부터 가봐야겠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죽임을 당할 때의 기분이 이랬을까. 모든 문과 창문을 열며 한마디 해본다. “모기퇴치 살충제, 너마저...”


편집자 : 안윤석PD

안윤석 PD harrypotter-t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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