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돈'

▲ 김민주 기자

지금은 해임된 고대영 KBS 사장이 2009년 보도국장이었을 때 국정원으로부터 부정적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200만원을 받았다는 보고서가 공개됐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나 다름없는 공영방송의 가치를 자신의 직위와 몇 푼의 돈으로 바꾼 사건이었다. 이후 그는 사장으로 승진했고 KBS 노조는 “고작 200만원으로 정권에 영혼을 판 언론인”이라고 혹평했다. 박근혜는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안전보장과 공공성 확보라는 신뢰를 저버리고 국민 세금을 사익으로 편취하며 국정을 농단했다.

인간 본연의 가치도 사회 전반에서 추락했다. 인간의 태생적 존귀함은 간데없고, 무의식적으로 그들이 받는 월급 수준만큼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곤 한다. 20대 여공이 노동 현장에 있는 유해물질로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기업은 산재를 인정하지 않고 외면하다가 이미지 손상을 입자 얼른 돈뭉치를 건네 입막음을 시도했다. 노동자가 대기업 회장 아들이나 국회의원 아들이었으면 애초에 다르지 않았을까?

▲ 생명과 인권, 정의, 사랑 등 무형의 가치는 돈으로 살 수 없다. ⓒ pixabay

페르에스벤 스톡네스는 <화폐의 심리학>에서 경제적 관점으로만 모든 것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양한 가치들을 걸러내는 깔때기라고 했다. 정신적 요소들은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아 그 가치를 계량화할 수 없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 쉽게 제외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주창한 애덤 스미스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사회 전체 이익도 증진할 것이라 예견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경제성만 따지는 사회는 전체 이익을 감소시켜 왔다. 엄연한 시장 실패다.

북한군 병사를 살려낸 이국종 교수는 사람의 생명 앞에 무엇도 끼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6발의 총을 맞은 석해균 선장을 후송할 때 앰뷸런스 비용이 4억원이 넘어 정부에서 소통이 원활하지 않자, 이 교수는 “내 돈이라도 낼 테니 일단 이송부터 하자”며 환자 생명을 구한 적이 있다. 그는 위험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블루칼라 계층 환자가 90% 이상이며 적자가 매년 발생하는 외상외과를 우리나라 ‘빅 4’ 대학병원은 외면한다고 비판했다. 사람 생명을 구해야 하는 의사와 병원조차 환자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게 현실이다.

사회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대접할 때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은 생명, 인권, 저널리즘, 사랑, 행복 등 무형의 정신적 요소에 따라 움직인다. 감히 돈으로 거래될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일도 하고 돈도 버는 것이다. 돈을 가장 중요시하고,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을 상품화하려 할 때 인간은 타락의 길로 빠진다. 한국 사회는 한때 “부자 되세요”가 국민적 덕담이 됐을 정도로 돈을 신처럼 숭배하는 사회다. 인간은 왜 사는가? 돈벌이를 위해 사는 게 인간인가?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진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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