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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 '높은 장벽'을 함께 뛰어넘다

기사승인 2018.03.12  02: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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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럴림픽] 장애-비장애 기자가 함께 본 2018 평창 개막식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은 장애인들이 기량을 겨루는 국제 스포츠 대회인 동시에 장애-비장애인이 함께 벽을 뛰어넘는 지구촌 메가이벤트로 기획됐다. <단비뉴스>는 장애인(김미나 기자)과 비장애인(유선희 기자)이 공동의 시선으로 대회 이모저모를 취재·보도하고 아울러 무엇이 잔존하는 벽인지를 살펴본다. '보도 과잉'이라 할 정도로 유사한 보도가 쏟아져 나온 동계 올림픽 대신 <단비뉴스>가 패럴림픽을 집중보도하는 이유다. (편집자)

어느 올림픽보다 감동적인 성화 점화

그가 성화대를 향해 돌아서자 관람석을 밝히던 불빛이 꺼졌다. 성화대로 올라가는 하얗고 긴 경사로만 밝게 빛났다. 촘촘한 계단은 사라지고, 45도 경사의 남은 언덕이 유난히 가파르다. 비장애인도 오르기 쉽지 않은 10m 남짓 되는 마지막 봉송로.

그는 로프를 만지작거리며 ‘등반’ 채비를 했다. 계단까지 걸어 올라온 앞 주자가 전해준 성화를 등짐처럼 짊어지고 관중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순간 경기장에 그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한민수!” 패럴림픽 한국 대표선수단 아이스하키팀 주장. 올해 마흔여덟. 서른 살 때 골수염으로 왼쪽 다리를 잃은 그가 의족을 한 채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로프를 감싸 쥐고 몸을 뻗어 성한 발을 언덕 위쪽으로 한 발짝 옮겼다. 이어 의족을 한 다리를 앞으로 끌어당겨 놓고, 다시 성한 다리를 앞으로 옮겼다. 등짐에 꽂아둔 성화불꽃만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출렁댈 뿐 3만 관중이 숨을 죽였다.

   
▲ 성화 최종 주자인 한민수 선수가 성화를 짊어지고 점화대를 향해 마지막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 ⓒ SBS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뚜벅뚜벅 위로 걸음을 옮겼다. 점화대 ‘정상’을 서너 걸음 남겨 두고 경사가 더 가팔라졌다. 그는 힘에 부친 듯 몇 번 제자리 뛰기를 했다. 마지막 한 걸음을 앞두고 잠깐 숨을 골랐다. 그리고 성한 발을 도착점인 점화대에 걸쳐 두고 팔에 힘을 주어 천천히, 신중하게 뒤쪽 발을 끌어 올렸다. 마침내 높은 점화대 정상에 올라선 것이다.

객석에서 환호가 터졌다. 그는 두 팔을 한껏 치켜 올려 손을 흔들었다. 50초 남짓 짧은 시간, 스물 두 걸음에 지나지 않은 등반이지만, 그와 함께한 선수들에게는 ‘긴 세월’, ‘높은 장벽’을 뛰어넘는 순간이었다.

성화를 스타디움에 들고 들어선 장애인 노르딕스키 국가대표 최보규 선수와 북한 노르딕스키 선수 마유철. 경기장 안에서 성화를 전한 장애인 크로스컨트리 한국대표 서보라미 선수, 희귀난치병으로 온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중증 장애가 있는 박은총 군과 아버지 박지훈 씨. 긴 계단을 밟고 올라와 한민수 선수에게 성화를 건네준 시각장애 알파인스키 대표 양재림 선수와 가이드 고운소리 선수. 이날 이들과 함께한 선수는 물론 장애인 모두가 함께 ‘벽’을 넘었다.

2018년 3월 9일 밤 9시 44분. 한민수 선수에게 성화를 건네받은 휠체어 컬링 혼성 국가대표팀 주장 서순석 선수와 평창올림픽 여자 컬링 대표팀 주장 김은정 선수가 성화대에 불을 댕겼다. ‘Barrier Free!’ 그렇게 ‘벽을 넘어서’ 평창 패럴림픽 성화가 솟아올랐다. ‘열정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Passions Moves Us)는 주제로 열흘간, 49개국 570명 선수가 벽을 넘어 그동안 길러온 실력과 ‘열정’을 겨루는 축제가 시작됐다.

   
▲ 9일 밤 평창 패럴림픽 성화가 점화된 뒤 조형물인 ‘공존의 구’를 배경으로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성화는 18일까지 평창 패럴림픽을 밝힌다. ⓒ 유선희

패럴림픽은 대회 시작 당시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paraplegia’란 단어와 올림픽(Olympic)을 합성해 만든 용어다. 점차 신체가 불편한 모든 장애인을 대상으로 범위가 확대돼 ‘신체장애인의 올림픽’으로 발전했다. 이후 비장애인과 다를 것이 없이 ‘나란히’(parallel), ‘동등하게’ 함께 간다는 뜻으로 패럴림픽이라 부른다. 그 뜻을 살려 3월 3일부터 시작된 패럴림픽 성화봉송은 장애-비장애 2인 1조로 진행됐다.

이들의 동행을 바라보는 관람객들도 하나가 됐다. 평창에서 가까운 태백시에서 온 천연희(44·여) 씨는 “다음에 다시 보기 어려울 거 같아 개막식에 왔다”며 “마지막 성화 봉송장면이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한쪽 발에 의족을 하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는 걸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장애 있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신체적으로 정상이든 정상이 아니든 누구나 한 두 가지 장애를 갖고 사는 것 같아요. 끈 하나를 잡고 언덕에 올라서는 모습에서 저마다 장애를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을 보러 온 김선규 씨와 어머니 이미희 씨가 스타디움 안 어묵 매장에서 인증샷 포즈를 취했다. ⓒ 유선희

경기도 화성에 사는 김선규(20) 씨와 어머니 이미희(48) 씨는 개막식 당일인 9일 아침 입장권을 예매해 평창으로 달려왔다. 김 씨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특별한 행사라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며 “힘든 장애를 이겨 내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고 큰 힘을 얻었다”고 했다. 이 씨는 “아들이 몸이 아픈 곳이 있는데 이번 패럴림픽을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왔다”며 “여러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씩씩하게 뛰는 선수들을 보니 역시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장애와 비장애가 열정으로 하나 되는 ‘동행’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은 지난달 25일 폐막한 평창 동계올림픽의 92개국 2,925명 선수에 비교하면 작은 규모다. 하지만 패럴림픽으로서는 45개국 570명 선수가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다. 그에 걸맞게 ‘열정 아래 하나’란 주제로 문화 공연과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개막식 첫 공연인 ‘Let’s Move – 울림’은 심장박동을 닮은 북소리에 맞춰 시작됐다. 북소리가 울려 나가면서 소리에 맞춰 스타디움 바닥에 LED 영상으로 연출한 물결무늬가 퍼져 나갔다. 의수의족장애인 신명진 씨가 두드린 큰북은 청각장애 무형문화재 악기장 임선빈 씨가 만들었다.

시각장애인 이소정 양과 패럴림픽 마스코트 반다비가 나와 ‘내 마음속 반짝이는’ 노래를 부르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가능한 꿈들’의 무대였다.

“보이지 않아도 그 별은 있네 / 잡히지 않아도 바람이 되어 불어오네 / 구름이 가려도 태양은 빛나네 / ... / 가끔은 부딪히고 넘어지기도 해 / 하지만 툭툭 털고 여기 하나가 되어.”

   
▲ 휠체어 공연인 '열정의 바퀴'. ⓒ SBS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참여해 역동적인 휠체어 공연을 보여준 ‘열정의 바퀴’, 가수 클론과 함께한 ‘평창 아리랑’ 공연에서도 출연자와 관람객이 하나가 됐다.

장애인 스노우보드 국가대표 박항승 선수의 부인 권주리(33) 씨는 개막식을 보고 “둘이 함께 겪으며 지내온 힘든 날들이 떠올라 처음에는 눈물이 났다”고 했다. 권 씨는 “그런데 선수 입장하는 항승씨가 신나 하는 모습을 보고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하다”고 말했다.

   
▲ 장애인 스노보드 국가대표 박항승 씨 부인인 권주리 씨가 9일 밤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 앞에서 남편의 경기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박 선수의 주 종목인 스노우보드 뱅크드 슬라롬 경기는 16일 열린다. ⓒ 김미나

그는 특히 공연을 보면서 시각장애인 이소정 양이 불렀던 노래가 가슴에 와 닿았다고 했다. 권 씨는 “우리 모두가 느끼고 함께한 마음을 잘 담아 준 가사가 그대로 마음속으로 쏙 들어왔다”고 했다. 그런 공연 하나하나를 비롯해서 모두가 ‘엄청난 걸 보여주어서가 아니라 작지만 우리들의 희망과 의지를 보여준’ 축제여서 좋았다는 것이다.

여전히 남은 ‘2%의 장벽’

선수들은 이렇게 스스로 벽을 넘어서고 있지만, 경기장 밖에는 여전히 이들을 가로막는 벽이 남아 있다. 평창 패럴림픽이 2% 아쉬운 부분이다.

9일 밤 개막식이 끝나자 휠체어 장애인들이 엘리베이터로 몰려들었다. 스타디움의 휠체어석이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1층에는 없고 2층 A석과 4층 C석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마저 몇 대 안 돼 휠체어를 타고 온 장애인들은 한동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장애인 관람객들이 참관하러 올 것이고, 더구나 한 달 안에 패럴림픽이 열리는 것을 고려해 경기장 1층에 휠체어석을 많이 만들고 2층 이상 관람석에도 휠체어석과 경사로를 만들었어야 한다. 여전히 비장애인들의 마음에는 장애인들과 동행한다는 생각이 없고, 그것이 여전히 그들에게 넘어야 할 벽으로 남아 있다.

댄스스포츠 휠체어 장애인 선수 황주희(28·경기도 화성시) 씨는 “개막식 공연은 멋졌지만 제대로 된 자리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휠체어 장애인들은 관람석에 들어가지 못하고 3층 난간에 모여 관람했다는 것이다. 황 씨는 “장애인 화장실도 남녀 구분이 돼 있지 않아 너무 불편했다”고 말했다.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좌석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려 주지도 않았다. 대회 조직위원회에 문의하자 “비공개 영역이라 말해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직위는 패럴림픽 전체 관중을 22만 명 정도로 보고, 그중 휠체어 관중은 3천5백여 명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이만한 숫자의 좌석을 준비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휠체어 컬링팀 주장이자 마지막 성화 점화자였던 서순석 선수는 <단비뉴스>의 인터뷰 요청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느라 1시간을 추위에 떨었다”는 말만 하고 입을 닫았다.

대회 조직위 관계자는 “임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경기가 끝나면 공연장을 바로 철거하기 때문에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 휠체어를 타고 승차할 수 있는 저상버스가 많지 않아 휠체어를 탄 관람객은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며 추위에 떨었다. ⓒ 유선희

휠체어 장애인들이 탑승할 수 있는 차 바닥이 낮은 저상버스는 일반버스에 비해 배차 간격이 길었다. 일반버스도 배차 시간이 10분이나 돼 관람객들이 줄을 서는데, 저상버스는 20분에 한 대씩 배차해 장애인들이 줄을 서서 추위에 한참을 떨어야 했다.

대회 조직위는 패럴림픽을 위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지원요청을 해 저상버스 44대와 휠체어 버스를 비롯한 특장차량 46대 등 특별교통수단 139대를 확보했다. 그러나 저상버스 수가 너무 부족해 배차시간이 길어졌고, 휠체어 리프트 미니밴 등 다른 교통수단과 편의시설도 장애인 이용객 수에 견줘 많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 경기장 내 이동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수송전용 앱 ‘Go PyeongChang’. 진부역에서 정선 알파인스키장까지 저상버스의 배차 간격이 30~67분으로 나와 있다. ⓒ 김미나

선진국 공영방송 편성의 '반의 반'도 안 되는 개최국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를 100여 일 앞둔 작년 말 입장권 판매율은 5.5%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 4일에는 전체 예상 판매량 22만 장을 넘은 23만3천여 장이 팔렸다. 패럴림픽이 예상외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지금도 조직위에 입장권 구매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지금이라도 장애인 편의시설을 확충해서 패럴림픽마저 새로운 ‘벽’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패럴림픽에 관한 일반의 무관심도 여전한 장벽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지난달 20일 '패럴림픽 방송사 중계를 청원합니다'라는 국민청원 요청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방송 3사에서 패럴림픽 경기를 중계하지 않는 것은 일부 국민의 시청권 침해와 함께,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패럴림픽도 중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팀 추월 경기에서 불거진 '왕따 논란' 때는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에 수많은 청원이 올라왔으나, ‘패럴림픽 방송 중계’ 청원에는 큰 반향이 없어 보인다. ⓒ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지상파 방송 3사가 겹치기 편성 논란까지 일으키면서 경기를 중계했다. 그와 비교해 평창 패럴림픽 방송에는 KBS가 18시간 20분, MBC 17시간 55분, SBS가 17시간 46분을 편성했다. 그중에서도 경기 생중계는 일부 경기에 치중해 있고 당일 경기 하이라이트와 녹화 방송은 자정이 넘은 1~2시에 방영한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62시간, 영국 채널4는 100시간, 미국 NBC는 94시간으로 역대 최장 편성을 했다.

10일 닐슨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패럴림픽 개회식 중계 시청률은 KBS 9.6%, SBS 5.4%, MBC 3.3%로 나타났다. 3사 중계 시청률을 합치면 18.3%나 된다. 평창 동계올림픽 열기가 패럴림픽까지 전해지고 있는 셈이다. 패럴림픽 개막식 중계방송을 보았다는 한은지(28·경기도 부천시) 씨는 “올림픽보다 패럴림픽 개막식이 더 감동적이었다”며 “개회식을 보고 다음 날 친구들과 패럴림픽 경기장을 찾았다”고 했다.

   

▲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슈퍼스토어에서 패럴림픽 마스코트 반다비 인형을 사서 베낭에 매달고 다니는 관람객들. ⓒ 한은지

패럴림픽 성공이 올림픽 완성

패럴림픽 조직위는 장벽(Barrier)이 없는(Free) ‘베리어 프리’를 구현하는 대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경기장 곳곳에서는 조직위가 생각지 못한 벽들이 여전히 남아있고 새로 생겨나고 있다. 올림픽과 달리 국민과 패럴림픽 사이에는 턱없이 부족한 방송 편성의 장벽이 가로 놓여 있다. 30년 전 88서울올림픽 뒤 패럴림픽보다 시설, 서비스, 경기운영은 많이 나아졌지만,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 열기가 식지 않게 벽을 허물어 나가는 노력도 계속돼야 한다.


편집 : 유선희 기자

김미나 유선희 기자 choms335@gmail.com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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