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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강의 들으며 딴짓하는 학생도

기사승인 2018.03.07  22: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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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환의 유물 풍속문화사] ⑮ 새 학기에 살펴본 학교의 기원

로마 시내 바티칸 교황청은 르네상스 미술의 성지이기도 하다. 집념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1508년부터 4년간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e)에 그린 ‘아담의 창조’ 등 천장화와 1533년부터 8년간 그린 ‘최후의 심판’은 탐방객을 무아지경으로 이끈다.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나와 관람객 인파를 따라가면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에 이른다. 벽면에 라파엘로가 1509∼1510년 그린 ‘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이 또 하나의 감동을 안긴다. 한가운데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옷차림을 한 대머리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인문학의 태두 소크라테스, 무소유 철학의 창시자 디오게네스, 만물의 근원을 불로 파악한 이오니아학파의 헤라클레이토스, 기하학의 비조 유클리드 등 고대 그리스 학자 54명을 거대한 돔 천장 건물 안에 그린 상상화다. 고대 그리스의 학교가 이렇게 화려한 모습이었을까? 개학과 입학의 계절 3월. 학교는 학생들로 생기가 넘치고 향학열로 불타오른다. 서양 학문의 근원, 고대 그리스의 학교 역사와 교육 풍습을 들여다본다.

   
▲ 아리스토텔레스(원 안)가 후진을 양성하던 아테네 리케이온 터. 바닥 시설이 잘 발굴돼 있다. ⓒ 김문환

폼페이 출토 나폴리 박물관 모자이크,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무대를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라는 이탈리아 중부 나폴리로 옮겨보자. 베수비오 화산을 병풍으로 둘러친 나폴리 산타 루치아 항에서 20분 거리에 국립 나폴리 박물관이 자리한다. 18세기 나폴리 왕국의 궁전 건물을 개조한 웅장한 박물관 2층 모자이크 전시실의 유물 한 점이 눈길을 끈다. 르네상스 시기 라파엘로가 상상으로 그린 아테네 학당보다 좀 더 실체에 가까운 그리스 학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플라톤의 아카데미(Plato’s Academy, 그리스어 아카데미아·Akademie)’ 모자이크다. 베수비오 화산재 아래 묻혔던 폼페이 시미니우스 스테파누스 주택(House of Siminius Stephanus)에서 출토한 BC 1세기 초 헬레니즘 시대 유물이다.

가운데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히마티온 차림의 남자가 플라톤. 지시봉을 들고 앉았다. 주변으로 6명 제자의 모습이 보인다. 두루마리 책, 스크롤을 들고 있는 등 학구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만, 노인대학도 아닌데 학생들 외모가 중실하다. 오른쪽에 흰옷을 입고 선 남자는 수업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멀뚱멀뚱한 표정을 짓는다. 저녁에 펼칠 질펀한 연회(Symposion) 생각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도 수업시간에 미팅 생각으로 머리를 꽉 채우는 학생들이 있지 않은가. 하긴 영어로 학교(School)의 어원은 그리스어 스콜레(Skole)인데, 원래 말뜻은 ‘공부’와 정반대인 ‘여가(Leisure)’에 가깝다. 학교 건물을 보자. 도리아 양식 기둥 3개가 비교적 화려한 모습이고, 맨 오른쪽 기둥 위에는 해시계가 얹혀 있는 점으로 미뤄 나름 품격을 갖춘 건물로 추정된다. 실제 플라톤의 아테네 학당, 즉 아카데미아를 볼 수는 없을까?

   
▲ 플라톤(원 안)이 세운 아테네 아카데미아 터. 철책으로 막혀 있는 터 안쪽에는 일부 대리석 타일 등이 발굴돼 있다. ⓒ 김문환

플라톤이 세운 그리스 최초의 학교, ‘아카데미아’ 유적

발길을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로 옮긴다. 택시를 타고 아테네시에서 나눠주는 관광지도에 표시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를 손으로 가리키며 “아카데미아”를 말하면 기사가 요리조리 골목을 헤집고 데려다준다. 아테네시 북서쪽이다. 나폴리 박물관에서 본 모자이크 속 도리아 양식 기둥을 가진 건물이 나타날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철책으로 막혀 들어갈 수 없다. 플라톤이 살던 시대보다 3m는 지반이 더 높아졌고, 철책 아래로 대리석 타일 잔해만 일부 발굴된 상태다. 철책을 잡고 아쉬움을 삭이며 잠시 플라톤이 왜 학교를 세웠는지 되새겨본다.

플라톤은 BC 399년 스승 소크라테스가 민중 배심원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민주정치 제도를 중우정치(衆愚政治)로 깎아내린다. 현명한 철학자가 다스리는 독재 철인정치(哲人政治)를 꿈꾸며 시칠리아로 가 독재자 디오니소스를 철인 군주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이게 될 일인가. 디오니소스에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제자의 도움으로 간신히 빠져나와 고향 아테네로 돌아온다. 모진 유세(遊說) 여정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공자처럼 정치를 잊고, 후진 양성에 전념한다. 이 무렵 BC 387년∼BC 385년경 그가 세운 아카데미아가 그리스 역사 최초의 교육기관이다. 아카데미아는 무려 900년 넘게 존속됐지만, 529년 기독교화된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이교도의 학문이라면서 폐쇄시켜 흙 속에 묻히고 만다. 고등교육기관을 뜻하는 아카데미(Academy)라는 이름만 남긴 채….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친 학교, ‘리케이온’ 유적

아카데미아에서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치던 리케이온(Lykeion)으로 가 학교의 흔적을 더 더듬어본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와 달리 아테네시 동부에 자리한 리케이온은 장소도 넓고, 건물과 체육관 터가 대부분 복원돼 학교의 윤곽을 가늠해 보기 좋다. 리케이온은 원래 태양신이자 학문과 음악의 신 아폴로 리케이우스(Apollo Lykeius, 늑대신 아폴론)를 기리는 신전이다. 여기서 소크라테스, 프로타고라스, 이소크라테스 등이 토론이나 강연을 펼쳤다. 그러다 BC 335년 아리스토텔레스가 매일 강연하면서 학교로 본격 활용된다.

이때는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가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폴리스(스파르타 제외)를 제압, 지배하던 시대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스타게이라 출신이다.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가 아들 알렉산더의 교육을 맡겨,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를 3년간 가르쳤다. 왕이 된 제자 알렉산더의 후광을 업고, 아테네 출신이 아님에도 리케이온에서 학교를 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더가 BC 323년 급사하자, 성난 아테네 시민들의 살해 위협을 피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도주한 데서도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떠난 뒤에도 리케이온은 운영됐지만, BC 86년 로마가 아테네를 정복할 때 로마의 독재자 술라가 잿더미로 만든다. 1세기 로도스 출신의 안드로니쿠스가 재건하지만, 267년 게르만의 일파 고트족 침략 때 완전히 파괴된다. 오늘날 프랑스에서 고등학교를 가리키는 리세(Lycee)에 그 잔영을 남긴 채….

   
▲ 제논(원 안)이 강의한 스토아 포이킬레가 있었던 아테네 아고라. ⓒ 김문환

제논, 아고라 ‘스토아 포이킬레’에서 교육…스토아학파 탄생

리케이온에서 아테네의 심장부, 고대 아고라(Agora)로 간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하며 거닐던 아테네의 중심지 아고라에 가면 북쪽 끝자락에 스토아 포이킬레(Stoa Poikile) 터가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리케이온에서 교육을 시작하던 BC 335년 키프로스섬 키티온에서 태어난 제논은 아테네로 들어와 BC 3세기 초 이곳 스토아 포이킬레에서 학당 간판을 내건다. 스토아는 지붕을 갖추고 한쪽은 벽, 다른 한쪽은 야외로 터진 복도를 가리킨다. 지중해 기후에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비를 가려주니 공부하기 안성맞춤이다. BC 5세기 중반 세워진 스토아 포이킬레는 프레스코 그림과 각종 조각으로 장식됐고, 특히 당대 지중해 최강대국 아테네가 각지에서 약탈해온 전리품을 전시해 아테네 아고라에서 으뜸가는 건물로 꼽혔다. 발굴 결과 도리아식 기둥과 이오니아식 내부 장식이 출토돼 라파엘로가 바티칸에 그린 아테네 학당의 화려함이 단순한 상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아카데미아나 리케이온이 전적으로 학교였다면, 제논이 가르친 스토아 포이킬레는 학교는 아니었다. 마뜩하게 학교 터를 마련하기 어렵던 이방인 제논이 아테네의 화려한 공공장소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이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연 시민학교라고 할까. 아무튼, 헬레니즘 세계와 뒤이은 로마 시대 가장 유행했던 학문, 금욕과 평정심의 스토아철학, 스토아학파(Stoicism)라는 이름은 제논이 가르치던 스토아 포이킬레에서 유래돼 오늘에 이른다.

아테네…부유층은 가정교사, 평민은 거리학교

1970년 1월 이스라엘에 점령지 철수를 요구한 며칠 뒤 우리 나이 99세로 세상을 뜬 영국의 수학자 겸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1945년 ‘서양철학사(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에서 “서양철학은 탈레스에서 시작된다(Western philosophy begins with Thales)”고 적는다. 오늘날 터키 서부해안 이오니아 지방의 그리스 도시 밀레투스에 살던 페니키아 태생의 그리스인 탈레스는 BC 585년 5월 28일 일식(日蝕)을 예측한다. 자연현상을 신의 노여움이나 기쁨의 감정 표현이 아닌 과학으로 처음 접근한 탈레스와 그 제자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을 합쳐 그리스 최초의 학문 그룹, 이오니아학파라고 부른다. 이후 학문의 중심이 그리스 본토 아테네로 옮겨지면서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여러 학자가 인문학으로 주제를 바꿔 이름을 떨쳤다.

이오니아에서부터 아테네까지 많은 학자가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학교는 없었다. 파이데이아(Paideia)라고 불렸던 교육(혹은 교육이념)은 학교 없이 선생님만 있었던 셈이다. 학교의 효시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다. 아테네에서는 대개 7세가 지나면 부유층은 개인 교사를 들였고, 그렇지 못한 경우 선생님의 집 같은 사적 공간이나 아고라의 광장, 심지어 거리 등에서 배웠다.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 없이도 배움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리스문자와 문법, 수학, 키타라 연주와 시문학, 무엇보다 야외 운동장 팔레스트라, 나체 체육관 김나지온에서 체육교육이 강조됐다. 지덕체를 갖춘 시민 ‘칼로스카가토스(Kaloskagatos)’를 길러낸 것이다.

스파르타, 국립학교 ‘아고게’ 군사교육…다른 나라 지도층 유학 신청

스파르타는 달랐다. 국가에서 공교육을 실시했다. 아고게(Agoge)라고 부르는 학교와 교육시스템은 강한 체력단련과 군사교육을 주요 목표로 삼았으니, 요즘으로 치면 사관학교라고 할 수 있겠다. 전설 속의 스파르타 최고 입법자인 리쿠르고스가 도입했다는 이 학교는 7세 남자아이들이 들어가 21세까지 엄한 규율 아래 배고픔과 혹독한 훈련을 견디며 심지어 도둑질까지 교육받았다. 영화 ‘300’에 나오는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와 일당백의 전사들은 그렇게 길러졌다. 알렉산더도 굴복시키지 못했던 스파르타의 최강 육군을 만든 토대는 아고게였다.

아고게에서 체력단련만 시킨 게 아니다. 그리스인의 기본이 되는 그리스문자, 춤, 시문학, 사교 등의 교육도 시켜 전사이자 품격 있는 엘리트로 키웠다. 따라서 아고게는 그리스 문명권 도시국가들 지배계급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스파르타 아고게에 유학 보내기 위한 도시국가 지배계급 인사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스파르타가 선별적으로 명예대사나 명예시민 형식으로 유학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요즘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 유명 대학에 유학 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트리면서 시작된 헬레니즘 시대(BC 331년∼BC 31년·과가멜라 전투에서 악티움 해전까지) 그리스에서, 중동, 이집트를 지배한 마케도니아 출신 왕조들은 앞다퉈 학문 분야에 투자했다. 헬레니즘 시대 크게 발전한 학문과 학교 교육은 다음 기회에 살펴본다.


<문화일보>에 3주마다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서양문명과 미디어리터러시' '방송취재 보도실습' 등을 강의합니다. (편집자주)

편집 : 장현석 기자

김문환 danbi@danb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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