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교육정책 보도 문제점

‘갈등성’ 치중해 착한 보도 외면

▲ 언론은 찬반양론이 첨예한 사안을 편파적으로 보도해 여론을 자주 왜곡한다. ⓒ Drooker.com

뉴스 가치의 주요 기준 중 하나는 ‘갈등성’이다. 갈등이 클수록 보도 가치는 커진다. 뉴스에서 미담보다 사건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까닭이다. 특히 보수언론은 진보적 교육 정책을 사회 갈등 구조로 몰아붙여 이슈화한 전례가 많다. 학생들에게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는 무상급식 제도는 시행 전후 큰 갈등을 겪었다. 무상급식 관련 보도는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을 부추겨 2011년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민투표를 단행해 스스로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고, 2015년에는 홍준표 경상남도지사는 무상급식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해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언론은 무상급식 반대 움직임을 앞다퉈 보도했지만, 무상급식을 경험한 학부모와 학생의 복지 효능감이나 무상급식 성공 사례는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 무상급식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진보적 교육 제도를 정착시킨 ‘착한’ 사례는 독자에게 쉽게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당국과 학생·학부모 등 교육 이해관계자 사이에 발생하는 대립은 부각된다. 기울어진 여론 지형 탓에 특정 교육 정책이 객관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좌초되면 피해를 보는 건 학생들이다. 균형 잡힌 교육정책 보도가 중요한 이유다.

혁신학교 갈등 증폭하는 보수 언론

▲ 김상곤 교육부장관이 경기도 교육감 시절 도입한 ‘혁신학교’ 확대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다. ⓒ JTBC

지난해 ‘혁신학교’ 논란에 불을 지피는 보수 언론의 보도가 쏟아졌다. 혁신학교는 김상곤 교육부장관이 2009년 경기도 교육감으로 취임하면서 도입한 학교 모델로 대표적인 진보 교육 정책이다. 혁신학교는 기존 성적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성과 자율성을 강조한다. 혁신학교에서는 교사에게 교육과정 자율권을 보장하며 학생들도 교육과정 설계에 참여할 수 있다. 학생들은 다양한 활동과 토론 중심 수업을 통해 인성을 함양하고, 교사와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자유로운 학습을 추구한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혁신학교의 전국적 확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100대 국정 과제로 꼽힌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3월 기준 전체 혁신학교 수는 1,154개 전체의 10% 정도다. 지역별로 경기(420), 서울·전북(각각 158) 순으로 많고, 대구·울산·경북 지역은 운영중인 혁신학교가 없다. 혁신초등학교가 685개로 전체 혁신학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혁신고등학교는 119개로 10%를 밑돈다. 실제로 혁신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만족도와 수업 성과는 높게 집계된 반면, 입시 부담을 안고 있는 고등학교에서는 당장 입시 공부와 다소 먼 혁신학교 수업과정을 놓고 학교당국과 학생·학부모 간 견해차는 커지는 양상이다. 보수 언론은 혁신학교의 성과와 한계에 관한 다각적인 접근보다는 혁신학교를 둘러싼 부분적 갈등 보도에 치중함으로써 혁신학교 전체에 부정적 인식을 갖게 했다.

▲ <조선일보>는 충북 제천고의 혁신학교 추진이 ‘학생 반대로 무산’됐다는 제목을 뽑았지만, 기사를 읽어보면 학생 500명 중 반대 의견은 불과 8표 많았다. ⓒ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2017년 9월 28일 ‘”검증 안된 실험”···혁신학교, 학생 반대로 첫 무산’ 기사를 내보냈다. 충북 제천고가 2년 동안 혁신학교 지정을 추진했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로 계획을 철회했다는 보도다. 기사에 따르면 이들의 반대 이유는 “대학 진학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익명 처리된 한 학생은 “혁신학교의 수업 방식은 수능 공부에 방해가 될 것 같다”고 인터뷰했다.

중도 성향의 <한국일보>는 11월 2일 ‘혁신학교 확대에 “입시부담” “학력 저하” 커지는 파열음’을 실었다. 혁신학교 전환을 추진하던 광주 대광여고가 학부모와 동문의 격렬한 반발로 돌연 신청 철회를 결정한 것을 보도했다. 두 기사에는 ‘성적 위주 교육’을 지양해야 한다면서도 학생과 학부모가 성적에만 연연하도록 옭아매려는 이중성이 드러난다.

반면 <서울신문>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혁신학교의 두 시선···”창의력 키운 학교” VS “성적 떨어지는 학교”’ 기사에서 혁신학교 도입 후 8년의 공과를 찬반 양쪽 견해를 고루 다루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기사였다. 혁신고등학교 졸업생 인터뷰를 실명으로 실어 신뢰성을 확보했다.

▲ <서울신문>은 혁신학교의 성과, 학력 저하 이슈 등을 객관적으로 보도했다. ⓒ 서울신문

혁신고교생의 낮은 성적을 공격의 빌미로

▲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한 취지로 운영되는 혁신학교의 의미를 성적에서 찾는 것은 모순이다. ⓒ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2017년 10월 12일 ‘혁신학교, 기초학력 미달 학생 3배 많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혁신학교 학업 성취 수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전국에서 치러진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기초 학력에 미달하는 혁신학교 고교생은 11.9%로 전국 고교 평균인 4.5%보다 3배 가량 많았다. 이 통계는 며칠 뒤 열린 국정감사에서 질타를 받았다. 곽 의원은 “혁신학교가 여전히 2류 학교를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질책했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국감을 하루 앞두고 혁신학교 학력 저하 통계를 반박하는 ‘서울형 혁신학교의 종단적 효과 분석’ 연구자료를 기초로 작성한 보도자료를 냈다가 왜곡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 네이버 검색창에 ‘혁신학교 학력’ 키워드를 조회하면 혁신학교에 부정적인 기사들이 상단에 노출된다. ⓒ 네이버

<조선일보> 계열 교육전문 미디어 <조선에듀>는 ‘국감, ‘혁신학교’ 공방 가열···학력 수준 놓고 엇갈린 시선’에서 혁신학교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놓고 벌어진 국회의원들의 설전과 이에 대응하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태도를 자세히 보도했다. <한국일보>도 2017년 10월 19일에 ‘“학력미달” vs “성적 향상” 혁신학교 공방’을 실었다. 혁신학교 학생들의 성적이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를 놓치지 않고 한 달여 뒤 후속 보도를 통해 혁신학교 공격에 박차를 가한다. ‘김상곤 주도 혁신학교 1164곳…학력 미달 고교생, 일반高의 3배’ 제목을 단 전문가 칼럼을 통해 혁신학교 확대 정책에 의문을 제기했다. 혁신학교를 둘러싼 갈등을 장기적으로 프레임화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전체 혁신학교 중 혁신고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며, 성적 불안감 역시 기존 대입제도를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유효하다. 현재처럼 수능성적으로만 입시가 결정되는 것이 아닌 다각적인 평가를 거쳐 대학 입학이 가능하도록 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은 이념적 편향이 아닌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제적인 추세에 발맞추는 정책으로 분석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나아가 혁신초등학교에 관한 학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라는 의견이 다수인 만큼, 제도 정착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부 과도기적 침체를 확대해석해 정책의 본질과 진정한 의미를 묻어버리는 것은 언론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혁신초교 ‘수업 재량권’ 문제 삼은 <조선>

▲ <조선일보>는 혁신학교 여교사의 성 가치관을 문제 삼는 기사 옆에 전통적인 성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실었다. 그 기사와 연관이 없는 ‘건강한 모유 수유아 선발대회’에 참가한 어머니들과 아기들 사진이다. ⓒ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2017년 8월 25일 ‘수업시간 ‘퀴어 축제’ 보여준 여교사···그 초등교선 “야, 너 게이냐” 유행’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바로 다음 날 ‘”혁신학교 수업 재량권 줬더니···편향된 성평등 교육”’ 기사를 A10면에 연속으로 보도했다. 언론인 출신인 김지영 동양대 초빙교수는 “제목은 언론사 제작노선과 가치관의 중요한 기준이며, 제목의 단수부터 그것을 말해준다”고 했다.

<조선> 25일자 기사를 보면, 두 단에 걸쳐 제목을 뽑았다. 여기에는 첨예한 쟁점이 숨어 있다.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가 주최하는 ‘퀴어 축제’는 보수적 신념을 지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 가치관을 배격하는 의미다. 이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준 교사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게다가 “너 게이냐”가 유행어로 도는 학교는 혁신초등학교다. 혁신학교라는 진보적인 교육 제도 탓에 여교사가 위험한 가치관을 퍼뜨리는 것을 막지 못해 학생들이 편향된 성 가치관에 노출되고 있다는 메시지가 제목 속에 함축돼 있는 것이다.

보도윤리 위반하며 교사 ‘마녀 사냥’

▲ <조선일보>는 혁신학교 수업 재량권 탓으로 편향된 성평등 교육이 불거졌다고 분석한다. ⓒ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이백 명 넘는 학부모가 교장과 모든 교사, 여러 서울시교육청 관계자 앞에서 위례별초등학교 교사가 진행한 수업에 항의한 사건을 보도했다. 문제의 최 교사가 “동성애 차별 철폐 교육을 한다”며 반기를 든 것이다. 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지난해 7월 열린 성소수자 축제 관련 사진과 영상을 보여준 것이 문제가 됐다. 논란이 확대될 가능성이 큰 사안인 만큼 신중한 보도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그러나 <조선>은 학부모들이 문제를 제기한 최 교사의 수업 방식을 익명의 학부모 인터뷰에만 의존해 기사를 작성했다. 실명 취재원은 한 명도 없었다. 최 교사 수업을 들었던 학생의 반응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도 없었다.

<조선>은 문제가 되고 있는 최 교사의 페미니즘 관련 온라인 활동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며 사건을 확대했다. 최 교사의 개인적인 인터넷 활동까지 상세히 보도했고, 최 교사 발언의 인터넷 댓글을 인용해 “교사가 남성 혐오를 부추긴다”는 의견에 힘을 실었다. 최 교사의 직접 해명은 한 줄도 싣지 않았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제3조 보도준칙 5항에 따르면, ‘보도 기사가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비판적이거나 비방적 내용을 포함할 때에는 상대방에 해명의 기회를 주고 그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조선>은 ‘투 소스 원칙’으로 통하는 기본적인 신문윤리를 위배했으며, 반론권을 존중하지 않았다.

‘입시’ 전문가가 ‘교육’ 전문가?

지난해 11월 2일 김상곤 교육부장관은 전국 시도 부교육감 회의에서 "특정 분야 인재를 육성한다는 애초 취지와 달리 학생 우선선발권은 고교 서열화와 초중등교육의 과열화를 낳았다"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을 예고했다. 핵심은 외고, 국제고, 자사고 등 특수고교의 학생 선발 시기를 전기에서 후기로 바꾸는 것이다. 일반고는 후기에 학생을 모집하니 개정안이 통과되면 특수고와 일반고가 동일한 시기에 학생을 선발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우수한 학생들이 특수고에 우선 지원하고, 떨어지면 일반고로 진학하는 현상이 빚어져 고교 서열화를 넘어 계층 간 분리 교육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또한 일반고 학생과 교사들이 공교육에 무력감을 느끼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조선일보>는 다음날인 11월 3일 ‘자사고, 외고 고사작전 돌입···내년부터 일반고와 동시 선발’ 기사를 냈다. 특수고와 일반고의 학생 선발 시기 조정을 ‘우선 선발권 박탈’로 표현하며, 특수고 입시에서 떨어진 학생이 모집 인원을 채우지 못한 다른 특수고나 일반고에 임의배정된다는 단점을 부각했다. 지원자의 수요에 맞지 않거나, 거리가 먼 학교에 다닐 불이익이 생긴다고 강조한 것이다.

▲ <조선일보>는 동시 선발권 시행으로 벌어질 현상을 사교육 전문가에게 물었다. ⓒ 조선일보

이 기사에서 나타난 특징은 ‘입시 전문가’라고 언급되는 사교육 전문가가 등장해 의견을 개진한다는 점이다. 특수고 선발의 탈락 위험을 감수하기 힘든 지원자들이 ‘명문 일반고’로 진학할 가능성을 지적한 전문가는 대성학력개발연구소 소장이었다. 이 연구소는 ‘대성학원’을 바탕으로 설립된 기업이다. ‘대성 모의고사’를 주관하고, 진학 자료를 제작·배포하는 곳이다.

지난해 8월 논의된 수능체제 개편안 확정 유예에 관한 <조선에듀> ‘중3 "내신 따로, 수능 따로 공부?" 중2 "1년 깜깜이, 고교 선택 차질"’ 2017년 9월 4일 기사에는 입시 전문가가 셋이 등장한다. 이들은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이사,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 소장이다. 모두 학원과 인터넷 강의 등으로 사업을 하는 사교육 기업이다.

‘입시 전쟁’이라 불리는 대입 제도에서 승리하려는 전국 수험생과 학부모, 학교관계자들은 입시 업체의 진단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대학 입시에 관해 많이 안다고 교육 전문가로 통칭할 수는 없다. 이들의 바탕이 교육 수요자의 혼란과 불확실성을 담보로 이익을 추구하는 ‘사교육’에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 업체가 국가 교육정책을 맹렬히 비판하고 대응 방안을 시장에 내놓는다는 건 넌센스다. 그들은 공교육 수요자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결국 믿을 것은 사교육뿐’이라는 인식을 심어야 생존할 수 있다. 업계 이해관계가 담긴 주장에 언론이 ‘입시 전문가’라는 권위를 부여하는 건 사교육 시장을 옹호하는 행위다.

또한 특수고 선발 시기 조정의 배경을 설명하기보다 ‘선발권 박탈’이라는 부정적 언어로 표현하고, 수능 개편안 유예 결정의 원인을 체계적 분석하지 않고 비판적 반응만을 담았다는 점에서 균형을 잃은 보도였다. 2011년 <미디어와 교육>에 실린 논문 ‘한국 언론의 교육보도 특성과 뉴스 가치 분석’에서 전문가들은 언론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거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교육 정책의 수립과 실천에 기여하지 못하였다”며, “교육 현실을 매우 제한되고 부정적 시각으로 취재, 보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해찬 세대’ 이은 ‘김상곤 세대’ 등장

‘이해찬 세대’는 1999년 김대중 정부 당시 교육부장관이었던 이해찬 국회의원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당시 이해찬 장관은 전인교육을 표방하며 특기적성 교육과 수행평가 등의 새로운 제도를 예고한 ‘교육비전 2002’를 발표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낯설어했다. 그전보다 자율적인 교육 환경이 조성됐으나 대학을 지위 획득 도구로 여기는 분위기는 여전했기 때문이다.

정책이 안정적으로 시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교육과정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수능시험을 처음 치르던 2002년, 교육과정평가원이 시험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면서 그들은 이전 시험들보다 훨씬 어려운 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간의 교육 정책이 원인이라고 느낀 사람들은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이라 비난했다. 어려운 시험, 준비되지 않은 학생, 대중들의 정책 이해 부족과 부처 간 의견 조율 실패가 빚어낸 현상이었다. 언론은 이 시기의 학생들을 ‘이해찬 세대’라 불렀다. 최근에는 이들 세대를 이은 ‘김상곤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 수능 개편안 유예를 발표한 이후 <조선일보>는 ‘부글부글 끓는 중3’, ‘날벼락 맞은 중2’라는 부정적 언어로 현장의 혼란을 표현했다. ‘김상곤 세대’라는 새로운 프레임도 등장했다. ⓒ 조선일보

‘김상곤 세대’는 수능 개편안 유예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8월 논의됐던 수능 개편 1안은 ‘일부 과목 절대평가 전환’, 2안은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이었다. 그러나 2017년 8월 31일 김상곤 교육부장관은 원안을 모두 폐기하고 “국가교육회의에서 수능·고교 학점제, 내신 성취 평가제, 고교 체제 개편, 대입 정책까지 포괄적으로 담은 교육개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발은 있었지만 유예에 찬성하는 여론도 컸다. 시안 발표 후 의견 수렴 기간이 20일에 불과했고, 어느 안을 선택하든 현행 입시 제도의 폐해를 타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사회적교육위원회’는 지난해 8월 28일 기자회견에서 “(수능 개편안은) 사실상 현행 수능에서 전혀 바뀌지 않은 기만적 방안”이며, “(절대평가는) 공정성 시비가 일고 절대평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개편안 유예 발표 직후 9월 1~2일에 <조선일보>는 사설을 비롯한 4개의 기사를 지면에 크게 실었다. 이 역시 갈등성에 초점을 맞춘 기사였다. ⓒ 네이버

2017년 9월 1~2일 <조선일보>는 개편안 유예에 관한 기사를 대대적으로 다뤘다. 모두 부정적 시각을 드러낸 기사였다. 긍정적 효과, 우호적 반응의 취재원은 등장하지 않았다. 개편안 유예에 관한 종합적 접근보다 비우호적 반응에 주력했다.

2017년 9월 1일 기사 ‘중3, 수업 따로 수능 따로···중2는 고입·대입 모두 깜깜이’에서는 중학생들이 자신을 ‘김상곤 세대’라고 부르며, 큰 혼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중학생이 ‘김상곤 세대’를 직접 발언한 인터뷰는 없다. 취재원으로 등장한 중학교 교사가 ‘중학생들이 스스로를 김상곤 세대라 부른다’는 인터뷰와 학부모가 ‘우리 아이가 김상곤 세대가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를 담았을 뿐이다.

▲ 마치 중학생들이 김상곤 세대라고 항의하는 것처럼 부제를 달았지만, 기사에서 중학생 인터뷰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 조선닷컴

한국신문윤리강령 10조 편집지침 3항 ‘미확인 사실 과대 편집 금지 원칙’은 ‘편집자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부득이 보도할 경우 과대하게 편집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학생이 한 적이 없는 발언을 직접 말한 것처럼 편집한 건 정책의 실험 대상이 될까 걱정하는 중학생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라 볼 수 있다.

<조선일보>의 이런 보도는 정책 수용자들의 비우호적 태도를 확대재생산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해찬 세대’는 실패한 교육 정책의 피해자라는 낙인이다. 국가 교육 개혁을 논하는 시기에 등장한 ‘김상곤 세대’ 프레임은 교육 당사자의 원초적 두려움을 자극한다. 한 누리꾼은 이를 지적하며 <조선>의 ‘이해찬 세대 20년만에···다시 교육태풍 맞는 '김상곤 세대'’ 기사에 댓글로 “선동이 잘 안 되니까 이해찬을 끌고 들어온다”고 지적하며 “마타도어로 여론몰이를 하려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교육 보도만은 ‘적절한 불편부당성’ 고려했으면

BBC 편집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공공 정책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안들을 다룰 때 언론은 ‘적절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고 논쟁적 주제들에 접근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BBC는 시사 문제나 공공정책 문제에 언론사 자신이 어떤 의견도 표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논쟁적 주제를 다룰 때에는 사건, 의견, 주장 등에 각각 적절한 비중을 안배하며 적절한 불편부당성을 달성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앞서 살펴본 언론들은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니 공영방송 수준의 불편부당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교육은 공공성이 매우 큰 분야다. 사익에 치우친 보도가 공익과 아이들의 미래를 해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육 보도에 관한 적절한 공정성을 염두에 둔다면, 언론은 국가 교육의 철학적 지향점을 논의하는 공론장 구실을 제대로 수행해 사회 통합을 이뤄낼 수 있다. 언론이 교육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수행하려면 더 이상 ‘갈등성’에 치우친 보도를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건전한 찬반 논의를 이끌며 대안을 제시하는 언론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편집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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