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다문화'

▲ 박경난 PD

박연은 조선 인조 때 귀화한 네덜란드인이다. 훈련도감에서 일하던 그는 병자호란에도 참전했다. 무과에 급제한 뒤에는 화포 개량, 조총 제조 등 신식 무기 개발의 중책을 맡았다. 그 덕에 조선은 홍이포와 신식 소총을 개발할 수 있었다. 하멜이 함께 떠나자고 했지만 박연은 조선의 핵심 관료였기에 귀국을 포기했다. 그는 조선 여성과 결혼해 두 자녀를 두고 조선에서 여생을 보냈다.

조선인 중에 이따금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이 나오곤 했다. 청나라를 배우자는 <북학의>를 저술해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실학자 박제가의 눈동자 역시 푸른빛이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을 ‘물소 이마에 칼날 같은 눈썹을 하고 눈동자는 검푸르고(綠瞳) 귀는 하얗다’고 표현했다. 그의 벗 이덕무의 저서에도 어떤 이가 푸른 눈동자에 대한 시구를 읊어 박제가를 조롱하는 것이라 여겼다고 쓰여있다. 박연의 후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박제가에게 그의 피가 흘렀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인조는 박연의 능력을 높이 사 이름과 관직을 내리는 등 합당한 대우를 해주며 그를 조선사회로 편입했다. 인조가 그를 낯선 외모에 말이 안 통한다는 이유로 죽였거나 노예로 부렸다면 조선이 신식 무기를 개발할 수 있었을까? 만약 박제가가 박연의 후손이라면 걸출한 지식인도 탄생할 수 없었다. 또한 정조가 박제가를 푸른 눈이라는 이유로 등용하지 않았다면 <북학의>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 조선시대에도 푸른 눈을 가진 조상이 있었다. ⓒ seemsartless

독일의 ‘물티쿨티’(Multikulti∙다문화)는 다문화가 배타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독일의 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주장이다. 1980년대 말 외국인정책에서 처음 등장해 장기 체류 정착 외국인들의 이주정책 등이 활발하게 논의됐다. 박연과 박제가의 사례도 다른 문화가 조선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물티쿨티’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에 사는 훨씬 다양한 이주민들은 그들처럼 잘 적응하며 능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경기연구원은 2014년 경기도 다문화가정 초등학생 자녀의 학업중단율을 조사했다. 중단율은 1% 정도로 비(非)다문화가정 자녀보다 4.5배 높았다. 문제는 학업을 중단하는 다문화가정 초등학생 자녀 수가 매년 늘고 있다는 점이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학업을 중단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화 차이를 겪거나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서다. 부족한 한국어 실력과 인종차별 때문이다. 한국어 교육을 지원해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문화를 비정상으로 보는 인식을 개선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다문화정책은 동화주의에 가깝다. 소수집단은 자신의 언어, 종교, 관습 등을 포기하고 주류사회의 문화에 동화하도록 강요받는다. 한국어만 배우는 것이다. 최근 할랄 산업이 주목받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이 할랄 음식을 먹기는 어렵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종교적 신념을 저버린 채 우리나라 식습관에 맞춰 생활한다. 반면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옆에 있는 푸드트럭 ‘할랄가이즈’는 전 세계 관광객의 필수 코스다. 미국의 이슬람 문화는 고유성과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미국 문화로 함께 발전했다.

캐나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헤겔의 승인 개념을 인용해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모든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가 다를 수 있다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주류문화로 통합하려는 생각은 이민자들을 2등 시민으로 낙인찍는다. 하지만 타자의 정체성을 인정하면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다문화가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문화 발전에 영감을 주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박제가가 자신의 푸른 눈을 부끄러워한 사회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을까? 외모, 언어, 종교, 다른 문화 때문에 능력을 차별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회여야 한다. 주류집단이 소수집단의 문화를 동등한 가치로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나아가 함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다문화정책의 올바른 방향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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